땅고를 춘 지도 1년 6개월이 넘어갑니다. 다른 사람보다 지난하게 늘어가는 춤 때문에 고민도 많이 하고, 욕심도 많이 생긴 시간이었지요. 그리고 "춤"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편견을 주는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춤을 춘다", "춤을 배운다"는 말을 하면 "춤바람이 났다"와 동일 시 시키며, 더불어 뭔가 여성으로써 가져서는 안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춤을 추러 간다"라고 하면, "남자와 부둥켜 안고 무엇을?"이라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땅고는 안고 추는 춤입니다. 어떻게 안냐면, 가슴과 가슴을 맞대지요. 그만큼 몸이 보내는 언어에 예민해야 하는 춤입니다. 이것이 사람에 따라서는 야하게 보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실제 땅고를 잘 추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이, '춤'에 집중을 하는 것이지 '사람'에 집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랍니다. 

보기와 달리 춤을 추면서 붙어있다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몸짓을 이해하고 그 리드를 받아야 하니까요. 그만큼 춤출 때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야할 수가 없는 춤입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티가 나고, 또 그렇게 조금만 딴 생각을 하면 상대방의 리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죠. 춤 못추는 사람만큼 춤판에서 매력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춤'은 기원의 몸짓이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사람들과 대화를 합니다. 하지만 대화는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 힘들죠. 처음 대화를 나눌 때는 성격도 잘 드러나지 않고요. 그런데, 춤은 추는 사람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급한지, 느긋한지, 강약이 있는지, 배려심이 있는지 한 번 추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에 점점더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늘 머리만 쓰고 살면서 다른 사람과 벽을 만드는 현대인에게 춤은 유일한 본성을 드러내는 활동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사람들은 클럽에서 춤을 추며 음악에 자신을 맡기고 드러내기도 하고, 여러 종류의 춤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게 되지요. 

"춤을 추러 간다"는 말은 "나를 가리지 않고 솔직히 보여주러 간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누가 뭐래도 당당하게 "땅고 추러 간다"고 말을 합니다. 나를 드러내 보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요. 

아래의 동영상은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땅고 마에스트로의 춤입니다. 할아버지의 춤. 화려한 장식 없이도 진짜 춤을 행복하게 즐기며 추는 모습에 늘 저런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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